홍콩 시위 이유 – 홍콩 송환법 사태가 시발점

2019년 4월 홍콩 정부가 추진하기 시작한 <범죄인 인도 법안> 관련 사태. ‘송환법’이라고도 하는 이 법안은 범죄인 인도 조약을 체결하지 않은 국가에 범죄인을 인도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이다. 홍콩 시민들은 이 법안이 통과될 경우 중국 정부에 반대하는 인권운동가나 반체제인사들을 중국 본토에 인도하는 데 악용될 우려가 있다고 보아 이 법안의 제정에 반대하며 지속적인 시위를 벌였다. 9월 4일 홍콩 행정 수반인 캐리 람 행정장관이 송환법의 철회를 공식 발표했지만, 시민들은 시위대 폭도 규정 철회·체포자 조건 없는 석방·경찰 행태에 대한 독립적 조사·행정장관 직선제 보통선거 실시 등을 요구하며 시위를 계속했다. 홍콩 정부는 계엄령에 준한 긴급법 발동을 결정, 5일부터 복면금지법을 시행했으나 시위대에 참가한 시민과 학생들이 경찰의 강경대응에 희생되면서 시위대와 경찰간의 물리적 충돌은 더욱 격화되었다

개요

홍콩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범죄인 인도 법안과 관련된 일련의 사태. 법안은 ‘범죄인 인도 법안’이 정식 명칭이며 ‘송환법’이라고도 한다. 2019년 대만에서 범죄를 저지른 한 홍콩 남성의 대만 송환 건으로 추진된 ‘홍콩송환법’이 중국에 반중국 인사를 송환하는 데 악용될 수 있다고 본 시민들에 의해 거센 반발을 낳으면서 시위가 촉발되었다. 6월 9일에는 100여 만 명이 참가했으며, 점차 반중국 시위로까지 발전했다. 시위대는 송환법 완전 철폐·시위대 폭도 규정 철회·체포자 조건 없는 석방·경찰 행태에 대한 독립적 조사·행정장관 직선제 보통선거 실시 등 5개 조건을 제시했다. 9월 4일 홍콩 행정 장관인 캐리 람이 송환법 철회를 공식 발표했다. 그러나 시민들은 나머지 4개 조건의 이행을 주장하면서 시위를 지속했고, 홍콩 정부는 10월 4일 긴급법 발동을 결정, 5일부터는 시위에서 복면착용을 금지했다. 그러나 물리적 충돌에 의한 사상자가 속출하면서 11월들어 시위는 더욱 격화되었다.

홍콩송환법 반대 시위

홍콩 정부의 범죄인 인도 법안 추진에 반대하는 홍콩 시민들이 첵랍콕국제공항을 점거하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 위키미디어 커먼스 | CC BY-SA

경과사태의 배경

‘홍콩송환법’의 추진은 대만 여행에서 동행했던 여성을 살해하고 귀국한 20대 홍콩국적 남성 사건이 계기가 되었다. 홍콩 내의 범죄가 아니어서 직접적인 처벌은 불가능했으므로 대만에 인도하려 했으나 대만과 범죄인 인도 조약이 체결되어 있지 않아 송환할 수도 없었던 홍콩 정부는, 이러한 법의 미비점을 보완하기 위해 범죄인 인도 조약이 체결되어 있지 않은 역외의 국가에도 범인을 인도할 수 있는 법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송환법 심의와 시민의 발발

홍콩 정부는 2019년 4월 3일 ‘범죄인 인도 법안’의 심의를 시작했다. 이 법안의 대상 국가에는 대만뿐 아니라 중국 본토와 마카오 등도 포함되었는데, 홍콩 시민들은 이 법안이 제정될 경우, 중국 정부의 판단에 따라 반중 활동을 하는 인물들이 중국 정부에 의해 범죄자로 규정될 경우 중국으로 인도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 거세게 반발하여 시위를 시작했다. 3월 31일 제정 반대 시위가 벌어진 이래 시위의 규모는 점점 확대되어, 6월 12일의 2차 심의를 앞두고 열린 9일의 시위에는 주최측 추산 103만 명의 시민이 시위에 참여했다.

시위의 확산

6월 16일에는 주최측 추산 200만 명이 시위에 참가했다. 이에 따라 홍콩 정부는 법안의 추진을 중지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시위대는 2017년 취임한 이래 친중 성향의 정책을 펼치고 있는 캐리 람 행정장관의 사퇴와 송환법의 완전 철회를 요구하면서 반중 시위로까지 발전했다. 8월 5일엔 50만 명이 총파업에 참여, 도시 기능이 마비되었으며, 9일부터는 시위대가 홍콩첵랍콕국제공항에서 송환법의 부당성을 알리는 시위를 시작했다. 공항에서의 시위는 점차 규모가 확대되었으며, 12~13일에는 공항 기능이 마비되었다.

시위대, 5대 요구사항 제시

중국 정부가 홍콩에 근접한 선전에 진압군을 집결 시킨 가운데 8월 18일 11주째 이어진 시위에는 약 150만 명이 참가했다. 재야단체 연합인 민간인권전선이 주도하는 이날 시위는 평화·이성·비폭력의 의미를 가진 ‘화이비(和理非) 집회를 표방했으며, 송환법 완전 철폐·시위대 폭도 규정 철회·체포자 조건 없는 석방·경찰 행태에 대한 독립적 조사·행정장관 직선제 보통선거 실시 등 5대 요구사항이 제시되었다.

송환법 철회

시위가 지속되면서 중국군의 개입이 우려되는 가운데, 시위대를 주도하던 시민들이 속속 구속되었다. 이에 대한 반발로 학생들까지 시위에 참여하는 등 9월 초까지 긴장이 계속 고조되었다. 9월 4일 홍콩 행정 수반인 캐리 람(林鄭月娥) 행정장관은 오후 6시 텔레비전 방송으로 방영된 녹화 연설을 통해 시위대가 제시한 요구조건인 송환법 공식 철회를 발표했으나 시민들은 나머지 4개 조건에 대한 이행을 주장하면서 시위를 계속했다.

긴급법 발동

10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70주년을 맞아 ‘국경절 애도 시위’를 벌이던 시위대에 대해 진압 경찰이 실탄을 발포, 18세인 고등학생이 가슴에 중상을 입고 병원으로 후송되었다. 이 사건으로 시위가 더욱 격화될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시위가 격해지자 홍콩 정부는 영국 식민지 시절인 1922년에 만들어진 <긴급정황규례조례(緊急情況規例條例)>(긴급법)를 발동하기로 결정했다. 이 법은 비상 상황 발생 시 행정장관에게 시위 금지, 체포, 검열 등 비상대권을 부여하는 법으로, 사실상의 계엄령에 해당하며, 1967년 한번 발동된 바 있다.

이 법이 발령되면, 긴급 상황에서 공중의 이익을 위해 행정장관에게 막대한 권한을 부여하여, 입법회(국회)의 승인 없이 법령을 시행할 수 있게 된다. 행정장관은 임의로 용의자의 체포와 구금, 추방, 압수수색을 시행할 수 있으며, 최대 종신형까지의 처벌을 결정할 수도 있고, 모든 교통·운송 수단을 통제하거나 출판과 통신에 대한 검열과 제한도 가능하며, 홍콩 역내로 출입하는 것도 통제할 수 있어서 사실상 계엄령에 해당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캐리 람 행정장관은 4일 특별행정회의를 주재해 이 긴급법 발동을 결정하고 이에 따른 <복면 착용 금지법> 시행을 통과시켰다. 이 법은 시위와 관련하여 마스크, 복면 등의 착용을 금지하는 내용으로, 시위 현장에서 복면이나 마스크를 썼다는 이유로 체포할 수 있으며, 이 법을 어기면 최대 징역 1년이나 25,000홍콩달러 벌금이 부과되는 내용으로 5일부터 발효되었다. 홍콩 시민들은 이 법의 시행에 대해 강력하게 반발했다.

임시 휴교령 발동

11월 들어 시위는 홍콩과 중국을 지지하는 사람들 사이의 대립국면으로 발전했다. 4일에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이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을 만나 캐리 람 장관에 대한 지지를 보여주었는데, 이후 경찰의 대응은 더욱 강경해졌다. 8일에는 시위중에 추락한 대학생 1명이 숨졌고, 11일에는 경찰이 쏜 실탄에 시위대 한 명이 복부에 중상을 입는 장면이 널리 보도되면서 시위대와 진압 경찰간의 물리적 충돌이 더욱 격화되었으며, 모든 학교에 14일 임시 휴교령이 내려졌다.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47XXXXXb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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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ORTER

   Kim Minye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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